문화대혁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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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서니 조회 11회 작성일 2021-01-24 12:27:0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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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붉은10년, 문화대혁명 (2006.10.28.방송)

[중국 어제와오늘]은 중국관련 KBS프로그램을 서비스하는 KBS의 공식 유튜브채널입니다.

[중국의 붉은10년, 문화대혁명]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사회에 광풍처럼 몰아쳤던 문혁은 중국판 ‘홀로코스트’의 역사입니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전면적인 계급투쟁을 진행했던 문혁은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발전을 30년 이상 후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도덕질서의 파괴와 중국인들의 정서에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잃어버린 한세대’라고 불리는 문혁세대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오쩌뚱의 사회주의 실험을 무산시킨 문화대혁명은 덩샤오핑 전후의 중국 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중국은 왜 마오쩌뚱의 ‘이상’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으로 상징되는 중국식 자본주의라는 ‘현실’을 선택한 것인지 문화대혁명을 통해 알아봅니다.

광기의 중국 현대사, 문화대혁명 이야기 feat. 홍위병

문화대혁명 이야기 그리고 어느 홍위병의 고백

1966년 중국,
마오에 의해 주도된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된다.

"자본주의와 전근대적인 문화를 몰아내자"
"그리고 새로운 사회주의를 실천하자"

이른바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시작된 것이다.

출처 홍위병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BGM정보

Kevin MacLeod의 Anguish은(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라이선스(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에 따라 라이선스가 부여됩니다.
출처: http://incompetech.com/music/royalty-free/index.html?isrc=USUAN1400047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부모형제까지 다 잡아야했던 중국에 있었던 비극 (11분 순삭 ver.) #효기심76

#문화대혁명 #마오쩌둥 #중국 #효기심

중국은 대약진운동 당시 참새 2억마리 다잡아 죽인 이후
뒤늦게 소련으로부터 참새 20만마리를 수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번 편에서 보셨겠지만 1959년 이후 대기근까지 터지면서 최대 4000만명 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사망합니다.

이제 마오쩌둥은 중국의 군대 전체를 통솔할 수 있는 군사위원회 주석자리에서 사임하고
이제 류사오치와 그 유명한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이 말아먹던 중국을 세탁기에 넣어 돌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전편에서 보셨다시피 소련의 스탈린처럼 될까봐 넘나 불안했던 마오쩌둥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부모형제도 적이라면 처단하라.
문화대혁명

저번 편에서 마오쩌둥이 사이비 농촌진흥청 실험에 전국민을 동원하면서
참새 오지게 잡으라는 삽소리까지 해서 중국이 개박살났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과거 소련의 스탈린이 죽고 난 이후 소련의 서기장이 된 흐루시초프는
레닌 관짝 바로 옆에 있던 스탈린 관짝부터 치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오쩌둥은 과대망상에 걸려서
흐루시초프처럼 새로 급부상한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이
저 스탈린과 똑같이 후려칠 것 같아 넘나 불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 중국 국가 주석
2.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 현재 공산당 총서기
3. 중국 공산당 군사위원회 주석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중국에는 저렇게 주석 자리가 사실 상 3개나 있습니다.
대약진운동 이후 나라 개판만들고 쩌둥이는 1번 '국가 주석'과 3번 군사위원회 '주석'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러나 현재는 총서기라고 불리우는 저 2번 주석자리는 지켜내게 됩니다.
저 2번자리에는 그나마 계속 앉아있었으니
목소리 하나는 계속해서 버럭버럭 낼 수 있었습니다.
번외로 현재 습근평이는 저 3개 주석 다해먹고 있습니다.

이 때
짜져있던 쩌둥이가 개수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엘리트 vs 노동자 농민
도시 vs 농촌
엘리트 노동자농민 도시 농촌 으로 사회를 반으로 뚝뚝 잘라 편가르기를 해서
현재 자본주의에 찌들은 엘리트 반동들이 도시에 오지게 많이 있고
한편으로 노동자 농민 농촌에 속한 순수한 공산주의를 수호할 사람들은 소외되고 있다면서
그들과 지는 한마음 한뜻이라면서
아주 전형적인 현재 2019년 전 세계 정치인들도 써처먹고 있는
편가르기질을 시작합니다.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
부모형제까지도 적이라면 처단하라

그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국가 퇴갤 끝장판
문화대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과거 대약진운동 당시 수백 수천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간 이유가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로 변질된 반동들
공산당 내부의 적들 때문에 죽어갔다면서 개소리를 하기 시작하는데
저 말도 안되는 말이 실제 통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의 상황을 이해해야하는데
당시 중국은 나라 꼴도 개판이었지만 한편 공산당 내부의 간부들이 부패하면서
중국판 공무원 시험도 개판이었습니다.
중국 내에서 성공했다라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당 간부가 되는 것
개천에서 용이 날 필요도 없이 누구든 평등할거라던 공산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중화인민공화국
그러나 1당 독재를 하면 할수록
학연 지연 인맥
공산당 간부는 대부분 학연 지연 인맥으로만 해처먹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현직 간부 인맥이 있을수록
농촌보다는 도시에 살 수록
돈이 많을 수록 공산당 간부가 되기 쉬웠습니다.
대약진운동 기간 내내 죽어간 수천만명은 대부분 농촌과 지방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농촌지방의 젊은이들은 바로 옆의 가족과 이웃들이 죽어가는 것을 봤고
게다가 이 중국 내부에서 성공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까지 겪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 많은 젊은이들이
이딴 나라에서 못살겠다며 홍콩으로 망명을 가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홍위병들이 노동자 농민 부모를 둔
농촌지역 출신의 어린 중고등, 대학생들이었던겁니다.
그 학생들은 1966년 8월 베이징 천안문광장에 저렇게 빨간 쪼가리를 들고 100만명이 모여듭니다.
그들은 과거 마오쩌둥이 말했던 단어
홍위병
붉은 공산사회주의를 옹위하고 보호하는 병사.
셀프로 홍위병이라고 불렀고 마오쩌둥도 홍위병이라고 불러줬었습니다.

자신들 스스로 붉은 공산사회주의를 진정으로 지켜낼 수 있는 병사라고 자화자찬하던 그들은
그 공산사회주의를 보호하지 않고 개박살 낸 주역으로 쩌둥이가 넘나 저격하고 싶어하던
급부상한 류샤오치와 덩샤오핑에게 육두문자를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훗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이 될 덩샤오핑은
홍위병들에 의해 끌어내려져서 장시성의 공장 노동자로 쫓겨납니다.
마오쩌둥에 의해 눈에 뵈는거 없던 어린 홍위병들
대약진운동 기간 내내 수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죽어간 진짜 이유가
모두 자본주의자에 찌들은 저 반동분자 새X들 때문이라던 쩌둥이의 개삽소리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홍위병들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고 있던 영국이나 인도와 같은 국가들의 대사관까지 박살을 내놨고
수 많은 문화재들도 새로운 공산사회주의 세상의 방해요소라며 때려부시기 시작합니다.
소림사의 여러 무술을 글로 적어뒀던 책들을 포함한 별에 별 책들을 다 태워버려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 복원도 가라로 한 문화재가 수두룩합니다.
그래서 몇몇 네티즌들은 장제스가 섬으로 튈 때 문화재 오지게 가지고 튀어서 다행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이제 홍위병들 눈에는
지들 눈에 멀쩡한 사람이 빨갱이로 보이면 빨갱이로 만드는 이 대한민국처럼
지들 눈에 멀쩡한 사람이 매국노로 보이면 친일파로 만드는 이 대한민국처럼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인데도 자본주의자로 보이면 그 공산주의자는 자본주의자라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했습니다.
홍위병들은 자기 부모가 마오쩌둥 때문에 대약진운동 당시 친구가 죽었다며 불평 한마디만 하면
셀프도 자기부모를 공산당에 보고해서 그 아버지를 끌고가서 패댔습니다.
저런 반동 부모를 둬서 죄송하다며 공산당에 사과를 했습니다.
누군가가 지나가다 트집 잡고 너 혹시 자본주의에 물들기 시작한 것 아니냐고 의심만 해도
동네사람 다불러놓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다며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자아비판을 해야했는데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웜비어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해달라며 카메라들 앞에서 하던 그 행동.
바로 그러한 자아비판을 문화대혁명 당시 중국에서
하루에도 수 백명이 해야했습니다.
헨리 키신저를 만났던 공산당 최상고위급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도 저걸 했었다고 할 정도니
말 다했습니다.

시진핑의 누나 시허핑은 이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에게 두들겨 맞다가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탄생한 기독교 개신교는
기존에 부패했던 가톨릭과 달리 부적, 면죄부라고 불리우는 면벌부같은 것을 모두 없애버렸고
성모 마리아의 상징성도 없애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였다.
합리화할 수단
당시 인간 자신들이 매일같이 짓고 있던 죄
종교개혁 이전의 인간들은 회개하면서 자기위로질할 것들이 있었지만
종교개혁 이후에는 사라진 것이다.
자기위로질을 하지 못하자
이제 죄를 씻겨냈다라는 깨끗해졌다는 그 좋은 기분이 생기지 않고
이제 '사탄 마귀'에 대한 공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스스로 알아서 죄를 애초에 짓지 않으면서 살아가야한다는
갑작스러운 오지게 큰 부담을 짊어지게 된 '오롯이 홀로 남겨진 인간'에게는
마녀사냥이 그 이전보다 더욱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마오쩌둥의 선동질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미 중세에도 있던 역사의 반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사상검증과 같은 마녀사냥은 국가마다 상황마다 차이가 있을 뿐
효기심 눈에는 이 대한민국도 남의 나라 욕할 처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은 정답 내리기를 참 좋아합니다.
지가 잘못한 것도 남이 잘못했다고 정답내리고 싶어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잘못한 인간으로 만들어서 정답을 내리고 싶어하는 것 같은 것들 말이죠.

종교개혁 이후 수 많은 유럽 사람들은
중세의 부패했던 가톨릭으로부터 탈피한 후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은 좋았든 나빴든 사회를 당연하게 지탱해주던
당연하게 의지해오던 그 가톨릭이 사라지자
오히려 불안감으로 인해 뭔 짓거리를 할지 모를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역사의 반복' 예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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